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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사회 이론은 무엇인가?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앞서의 질문에 답하고자 자율적 공생(共生)의 원리와 기술을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주는 이론으로서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창안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이 독창적인 신생 이론을 위한 사유의 단편들이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이름이 낯선 까닭은, 이 말 자체를 그레이버가 창안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은 우선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존재하게 될지 모르는 어떤 이론"으로 구상되었다. 이처럼 도래하지 않은 것을 '미리' 창안하는 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원리이기도 한 '예시적 정치'와 유사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은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형식의 사회성을 창출하여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원리"라고 설명되는데, 즉 살고 싶은 방식으로 곧장 살아나가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이론, 특히 자치를 위한 사회 이론과 인류학이 어떻게 어울린다는 건지 자못 의아하다. 인류학 하면 흔히 민속 사료를 살펴보고 원시부족들을 관찰하는 모습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인류학의 주요한 연구 방법인 민족지학(ethnography)은 실제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활상의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레이버의 목적은 민족지학의 연구 방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아나키즘의 방식과 긴밀히 연결시키며 근본적인 질문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졌는데,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주 소개된다.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그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2011년 월가를 점거했던 오큐파이 운동에 깊이 참여하며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작성했던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보는 그의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고급의 이론보다 항상 실천에 방점을 둔다.


그가 이 책에서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통해 제시하는 이론 및 실천의 핵심은 "낡은 사회의 껍질 안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가능하며 "실존하는 대중적 실천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미래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주요 도구는 상호부조와 자기조직화이고, 이를 역사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바로 인류학이다.


인류학은 곧잘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고, 아나키즘은 자주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현대사회처럼 갈등이 고도화되고 이전 시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주의를 경험한 인류에게는 '좋았던 옛 시절' 따위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레이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은 양적으로는 변화했지만 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인류가 기술이나 사회체제를 고도화시켰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그 '오래된 가능성'이란 무엇보다 '전환'을 가리킨다. 인간사의 유구한 진실은 다름 아닌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다니엘 에버릿 지음


이 책은 남미 대륙 아마존 강 유역에 사는 파다한 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파다한 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거주지가 외부 세계에서 동떨어진 아마존 유역인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그들의 언어에 있다. 일단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는 외지인이 아무도 없고, 그들 부족민 중에도 외지 언어를 구사하는 이가 없다. 이런 탓에 이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등을 이해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언어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하다." 이들의 말은 현존하는 다른 어떠한 말과도 연관성이 없다. 얼핏 들으면 전혀 인간의 말로 들리지 않고 동물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저자 다니엘 에버릿은 언어학자이며 이 책의 내용을 경험하던 당시에는 기독교 선교사 신분이었다. 그는 파다한 언어를 배운 다음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목적을 갖고 1977년 말에 외지인이 닿기 힘든 땅인 파다한 마을에 처음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30년 간 아마존 강 유역 곳곳에 퍼져 사는 여러 파다한 마을에서 몇 년씩 거주하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경험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연구했다. 그가 처음 파다한 사람들을 찾아간 목적은 '선교'였으나, 결론적으로 그의 목적은 실패하고 만다. 그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에 깊이 빠져들면서 오히려 자신이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로 거듭나게 된다. 아마존 현장 연구가 그의 삶을 바꾼 것이다. 이 책은 그 심경의 변화를 소개한다. 그는 파다한 사람들의 무엇에 감화된 것일까?


저자는 30년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바로 파다한 사람들을 처음 봤을 때라고 말한다. 첫 만남부터 이들은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했다." 정글에서의 삶이란 어찌 보면 고난의 연속인데, 그럼에도 이들은 여유를 잃는 법이 없었다. 이를 단순히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라고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들의 문화 전반이 철저히 '현재'를 인식하게끔, 일상의 기쁨에 집중하게끔 수렴돼 있다. 저자는 그들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이 독특한 문화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하지만,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게 일상인 문화권에서 건너간 저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여러 곤란을 겪는다. 그 세세하고 흥미로운 (때로는 가혹한) 우여곡절들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다.


철저하게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사는 파다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언어를 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파다한 사람들은 직접 경험한 것만을 말하고, 그런 이야기만 믿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경험이 곧 인식이며 세계 자체다. 경험 밖의 영역이나 추상적인 영역은 그들 세상에서는 도외시된다. 이는 아마존 유역에 사는 다른 부족들과도 차별적인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다. 저자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가 실패한 궁극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음'을 전해주면 이런 식으로 반문한다. '네가 그걸 봤어? 너도 거기에 있었어? 아니라면 우리는 믿을 수 없어.'


파다한 사람들의 철저한 '현재 지향', 그리고 책에서 수시로 묘사되는 그들의 풍요로운 웃음소리는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아마존 마을 답사기인 한편 인류학과 언어학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탐구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큰 미덕은 저자의 이야기 솜씨인 것 같다. 파다한 부족에게 큰 애정을 가진 저자는 그 애정만큼이나 생생한 관찰과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의 삶이 현재로부터, 그리고 구체적인 경험과 인식으로부터 동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언제든 거듭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어빙 고프먼 지음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여러 개의 가면을 상황에 따라 바꿔가며 쓴다. 회사에서는 회사생활에,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에 어울리는 가면을 쓴다. 혼자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름의 가면을 쓴다. 동네잔치에 참가한다면 마주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다양하니만큼 보다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게 된다.


이 책 <자아 연출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 분야를 개척한 대가로 평가받는 어빙 고프먼의 책으로, 한국어판의 부제는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책을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이 건물이나 공장처럼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서 조직되는 사회생활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상세한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 나는 개인이 일상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 자신에 대해 남들이 받게 될 인상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방식, 남들 앞에서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일들을 살펴볼 것이다."


앞서 적은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는 것이 책이 전제하는 바다. 사람은 사회적 삶의 일부인 일상에서 시시각각 '자아를 연출'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양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우리가 영위하는 '사회적 삶'에 대한 꽤 색다른 이해다. 특히나 직장이나 공동체 등에서 우리가 나누는 상호작용이란 것도 새로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아무 거짓 없는 맨얼굴' 같은 것을 순수 상태로 친다. 그 무엇인 척하지 않고 그저 자신인 채로 교류하는 것을 솔직하고 정직한 것으로 치며 그런 자세를 권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순수 맨얼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맨얼굴 역시 맨얼굴로 연출된 가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낙담할 일일까. 이 책은 반대로 지적한다. 사회적 삶에서는 모두들 역할이 필요하고, 역할은 가면을 쓰는 일에서 비롯한다. 가면은 '가장한다'는 함의 탓에 부정적으로 비춰지지만, 실은 인간 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가면은 자아의 변질이 아니라 그것이 꼭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자연물의 일종일 뿐이다.


오히려 가면을 쓰지 않는 의사소통이 폐단을 일으키기 쉽다. 우연한 기회에 아빠의 직장에 놀러간 천진난만한 꼬마를 상상해보자. 두꺼운 안경을 쓰고 배가 볼록 나온, 아빠가 평소에 무심결에 묘사하던 외양의 어떤 남자가 모습을 보이자 꼬마가 외친다. "아빠 저 사람이 그 '사장놈'이야?" 사회적 역할을 전연 의식하지 않는 순진무구한 자아는 이럴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라는 무대에서 자아를 연출한다는 점은, 일상생활을 '연극'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단서를 준다. 실제 이 책은 그렇게 연극 공연의 관점을 통해, 연극 형식에서 도출한 원리를 통해, 일상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의 동태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온 세상은 다 연극이다'는 차원은 아니다. 고프먼은 사회와 자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통해 사회생활의 '진짜' 구조를 살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말미에 실린 추천사에는 이런 재밌는 대목이 있다. <고프먼의 학문과 일생을 관통했던 주제를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것은 "세상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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