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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 / 김석희 옮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자 존 러스킨에 대한 간디의 상찬 때문이었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한번 읽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생활을 그 책의 이상에 따라 변경하기로 결심했다. 내 생애에 즉각적이고도 실천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바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이다."(<간디 자서전> 370쪽) 강렬한 독서 이후에 간디는 이 책을 구자라트어로 직접 번역하여 <사르보다야(Sarvodaya, 모든 이의 안녕)>라는 제목으로 출간까지 한다. 간디뿐만이 아니다. 월리엄 모리스, 마르셀 프루스트, 레오 톨스토이도 존 러스킨을 상찬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러스킨은 가슴으로 생각하는 희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보고 느낀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미래에 생각하고 말할 것까지도 생각하고 말했다" 과연 러스킨의 무엇이 이런 사상가들까지 감화시킨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성경 속 구절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마태복음> 제20장의 구절로 다음과 같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느 포도밭 주인과 같다. 그는 하루에 1데나리우스를 주기로 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밭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또 한 무리 사람들이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도 말하기를 "당신들도 포도밭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 …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도 나가서 이와 마찬가지로 하였다. … 저녁이 되어 포도밭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1데나리우스씩을 받았다. 그러니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1데나리우스씩을 받았다.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상당히 긴 인용이지만, 이 구절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왜 포도밭 주인은 노동량이 다른 일꾼들에게 모두 같은 품삯을 주는 게 맞다는 것인가? 일할 시간에 빈둥거린 사람들에게 어째서 아무 질책이 없는가?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끄집어내며 실로 '모든 이의 안녕을 위한 경제학'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이 책은 요즘 더욱 주목받는 의제인 기본소득 및 사회적경제 등을 성찰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150여 년 전에 집필된 책이지만 역시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이 미래에 생각하고 말할 것까지도 생각하고 말한 듯' 여겨진다. 책의 원부제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에 관한 네 논문'이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이토 히로시 지음 / 지비원 옮김 나는 2년 전 살던 도시의 직장을 그만두고 별다른 연고도 없는 옥천에 가족과 이사했다. 어마어마한 주거비용과 만원 버스에 실려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밤에 퇴근하는 생활, 주말에 모처럼 나선 공원에서까지 미어터지는 사람과 자동차에 진저리가 나서였다. 그러나 이사를 올 때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떻게 먹고사느냐?'의 문제였다. 다행히 낙천적이었던 나는 아무도 나를 고용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고용(?)하기로 하고 포도밭출판사라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그런데 사실 신생 출판사로서 출판만으로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본업 외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겸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스 편집기자'라는 직함으로 옥천신문사에 일을 얻었고, 책을 조판하는 프로그램인 인디자인 사용법 강의를 다니며, 다른 출판사들에서 책 디자인 의뢰를 받는 북디자이너로도 일한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아마 평생의 과제일 것 같지만, 처음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저런 재주를 활용하면 적어도 배는 곯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의 저자인 이토 히로시는 이것을 '생업적 감각'이라 부른다. 1979년생이니 나와는 나이도 비슷하다. 저자는 고생 끝에 들어간 벤처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한 대가로 비싼 집세를 내고 중독처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어느 순간 생각한다. "이런 인생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그는 200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생업을 꾸리는 일에 나선다. 저자는 어딘가에 고용되어 한 가지 업종에서 집약적으로 일하는 '전업'은 근대의 산물이며 인간의 본성에 어울리는 노동방식도 아니라고 말한다. 돈이 많이 들 법한 준비를 하지 않고서도 생활 속에서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일 몇 가지를 조합하여 일하며 생활에 충실을 기하는 것(34쪽), 이것이 바로 저자가 추천하는 생업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장기 불황과 그로 인한 사회 불안을 겪고 있다.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으로 원치 않는 퇴직을 한 후 금쪽 같은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몇 년 안에 파산하는 경우도 흔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사업의 투자비용을 늘리고 규모를 키우는 게 오히려 독이다. 생업 방식에서는 거창한 전업 대신 작은 일거리를 다양하게 꾸리길 권한다. 규모화나 경쟁보다 믿을 만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생활해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70쪽). 생업은 자본논리에 반(反)하는 생계 방식이기도 하다. 당장은 전업을 차버리고 생업을 선택할 자신이 없다고? 그렇다면 최소한 부업을 하는 데서 출발해 보는 건 어떨까? 저자는 지금 회사원이래도 조금씩 부업을 시작하라고까지 권한다(68쪽), 이런 경험을 쌓는 것이 생업적 감각을 몸에 익히고 벼르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어쩌면 미래를 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든든한 저축액보다 바로 이 자기만의 생업적 감각일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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