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안녕을 위한 경제학
- 진규 최

- 2015년 10월 16일
- 2분 분량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 / 김석희 옮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자 존 러스킨에 대한 간디의 상찬 때문이었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한번 읽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생활을 그 책의 이상에 따라 변경하기로 결심했다. 내 생애에 즉각적이고도 실천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바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이다."(<간디 자서전> 370쪽) 강렬한 독서 이후에 간디는 이 책을 구자라트어로 직접 번역하여 <사르보다야(Sarvodaya, 모든 이의 안녕)>라는 제목으로 출간까지 한다. 간디뿐만이 아니다. 월리엄 모리스, 마르셀 프루스트, 레오 톨스토이도 존 러스킨을 상찬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러스킨은 가슴으로 생각하는 희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보고 느낀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미래에 생각하고 말할 것까지도 생각하고 말했다" 과연 러스킨의 무엇이 이런 사상가들까지 감화시킨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성경 속 구절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마태복음> 제20장의 구절로 다음과 같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느 포도밭 주인과 같다. 그는 하루에 1데나리우스를 주기로 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밭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또 한 무리 사람들이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도 말하기를 "당신들도 포도밭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 …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도 나가서 이와 마찬가지로 하였다. … 저녁이 되어 포도밭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1데나리우스씩을 받았다. 그러니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1데나리우스씩을 받았다.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상당히 긴 인용이지만, 이 구절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왜 포도밭 주인은 노동량이 다른 일꾼들에게 모두 같은 품삯을 주는 게 맞다는 것인가? 일할 시간에 빈둥거린 사람들에게 어째서 아무 질책이 없는가?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끄집어내며 실로 '모든 이의 안녕을 위한 경제학'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이 책은 요즘 더욱 주목받는 의제인 기본소득 및 사회적경제 등을 성찰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150여 년 전에 집필된 책이지만 역시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이 미래에 생각하고 말할 것까지도 생각하고 말한 듯' 여겨진다. 책의 원부제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에 관한 네 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