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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순례자>(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수록), 레오 톨스토이 지음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두 순례자>는 예핌과 엘리세이, 두 노인의 이야기다. 예핌은 모든 일에 있어 신실하고 자기 일에 엄격했으며, 나이가 일흔 살이었지만 건강도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에 비해 엘리세이는 몸집이 왜소했고 얼굴빛도 거무스름했으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래 부르며 사람들과 노는 일을 좋아했다.


두 노인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나자고 한참 전부터 약속해둔 터였다. 그런데 예핌이 항상 일이 많아 바쁘다며 약속을 미뤘다. 예핌은 집안일부터 자식들 일까지 뭐든지 자기가 단도리를 해야 직성이 풀렸으므로 늘 여유가 없었다. 반면 엘리세이는 자기가 집에 없더라도 다들 알아서 잘 해낼 거라고 믿었기에, 어서 간절히 바라온 순례를 떠나자고 재촉했다. 심지어 엘리세이는 예핌처럼 부자가 아니라서 여행 자금이 부족하면서도 그렇게 졸랐다. 둘은 가네 마네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예핌이 마음을 잡으면서 길을 떠나게 된다.


여로에 오른 지 다섯 주째였다. 그날 두 노인은 어느 흉년 든 지역에 이르렀다. 계속 나란히 걷던 둘은 엘리세이가 농가에 가서 물을 좀 얻어먹겠다고 하는 탓에 결정적으로 길이 어긋난다. 예핌은 목표한 순례지를 향해 쭉 걸어가지만, 엘리세이는 물 한 잔 얻어 마시러 간 농가에서 용무를 마치고 바로 돌아 나오질 않은 것이다.


엘리세이가 찾아갔던 농가에는 흉년 탓에 굶주린 일가 식구들이 곧 죽을 듯이 지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기력이 없고 어른들도 맥없이 누워 있었다. 그 집 할머니에게 물어 사정을 들어보니, 이 가족의 상황이 원래부터 이토록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흉년에도 불구하고 먹고살려고 서로 도우며 열심히 지냈는데, 없는 형편에 지쳐가던 차에 급기야 전염병이 덮치면서 일순간 위험한 지경이 된 것이었다. 엘리세이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친구를 따라갈 생각을 접고는 그날부터 그 집에 머물며 마치 자기가 집주인인 것마냥 집안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간병을 하자 가족들의 건강이 회복세를 보였다. 엘리세이는 그제야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몸이 떠나지질 않았다. 자기가 떠난 뒤 다시 곤경에 처할지도 모르는 이 가족의 형편을 생각하자 홀가분하게 순례 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 결국 엘리세이는 가족들이 부칠 땅을 사주고 말과 밀가루와 젖소까지 사준 뒤에야 다시 여로에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수중의 돈이 모자랐기에 순례지로 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엘리세이는 다시 수 주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만 돈을 잃어버려서 혼자 돌아왔다'고만 설명했다.


엘리세이와 헤어져 순례지로 향한 예핌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예핌은 마침내 베들레헴 성지에 도착했고 여러 날 동안 그곳에서 기도를 했다. 하지만 수중의 여비를 혹시나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두고 온 식구들이 재산을 잘 지키고 있는지 걱정하느라 시시각각 마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일 년 가까이 흐르고 마침내 예핌도 자기 마을로 돌아온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마을로 돌아온 예핌은 드디어 엘리세이와 조우한다. 그리고 자신이 순례 내내 찾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로 친구 엘리세이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예핌 자신은 긴 순레 내내 기도를 쉬지 않았지만, 진정 신을 만나고 온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언제나 삶과 생명을 사랑한 엘리세이라고.

<근질거리는 나의 손>, 김성원 지음


지난주 며칠간 이어진 한파에 세탁기가 얼었다. 사나흘은 괜찮았지만 닷새가 넘어가자 차츰 입을 옷이 없어지고 손빨래를 해야 하는 불편이 시작됐다. 게다가 탈수 기능으로 물기를 빼지 못한 옷들은 제대로 마르질 않았다. 그때 예전에 어느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본 소위 '적정기술 세탁기'가 떠올랐다. 이 물건은 페달을 밟으면 내부의 통이 돌면서 세탁과 탈수가 되는 도구로 전기 없이 작동하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새삼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서 '이참에 적정기술 세탁기를 구해볼까'라고까지 생각했으나 알아보니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우리는 전기 없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기를 적게 쓰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만일 전기가 넘치는 세상을 좇다가는 핵 발전과 같은 대규모전력생산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기 십상인데, 이러한 전력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대형사고 위험을 내포한다. 그리고 후쿠시마처럼, 밀양처럼 삶터와 자연을 파괴하는 비극을 일으키고 만다.


그런데 전기라는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지금 우리의 생활을 가능케 하는 저 많은 작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근질거리는 나의 손>에서 근사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사회와 삶의 경로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손'을 쓰라고 권한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길을 가다 한 노인이 항아리로 채마밭에 물을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효율은 낮고 힘들어 보였다. 자공은 용두레라 불리는 물 대는 기계를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노인은 일을 쉽고 빠르게 하려고 기계를 만들어 쓰고자 하면 반드시 '기심(機心)'이 생기게 되어 순진하고 소박한 생명력을 잃게 된다고 한다. 기심으로 인해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도를 체험하고 살필 수 없다며 거절했다. (13쪽)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 채마밭 노인의 일화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하루의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고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심 없는 삶, 순진하고 소박한 생명력으로 채워지는 삶으로의 전환을 생각하면 기계를 거부하는 노인의 실천은 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국내에 직정기술과 수공예 생활기술 들을 소개하고 실천해온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국내 처음으로 '흙부대 집'을 지어서 살고 있으며 손수 난로제작, 직조, 미장 등을 익히고 가르치고 있다. 앞서 채마밭 노인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손의 기술을 되살리고 몸의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만들고 생각하고 꾸미고 창작"하는 삶을 도모해나가자는 것이다. 한편 책에는 전기, 기계, 자본 등이 압도하는 현대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가득하다. '손 쓰는 삶'이란 몸이 지닌 잠재력을 앗아가는 산업 문명에 맛서는 대안으로도 유의미하다.


워낙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서 책에 소개된 여러 생활기술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들지만, 그럼에도 잠자고 있는 우리 안의 '손 쓰는 인간'을 깨우자는 말이 참 솔깃하다. 이 책은 생활의 재료들을 직접 매만지고 두들기면서 살고 싶어 '근질거리는' 이들에게 훌륭한 발판이 돼줄 듯하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미루야마 겐지 지음 일본 작가 미루야마 겐지는 1943년 생으로, 20대 무렵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발표한 <여름의 흐름>이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이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받으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나가노 현 아즈미노라는 동네로 귀촌한다. 이후 문단과는 일절 관계를 끊고 창작에만 전념한다. 독특한 행보인 셈인데, 글의 스타일 역시 거침없고 결연해서 그 점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꽤 있다. 이 책도 제목부터 거침없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과연 무엇을 두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까. 시골생활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열병처럼 당신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혹 당신은 도시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시골에서 얻을 수 있다는, 그야말로 망상에 가까운 환상을 품고 있지 않은가요. (...) 당신은 도대체 시골이란 곳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숨겨진 정보를 얼마큼 얻고 나서 그렇게 대담하고 유치한 결단에 이른 것인가요.


'그런 것'이라는 표현의 속뜻인즉, 시골생활에 대한 환상을 말한다. 결국, 시골은 뭘 모르는 당신의 머릿속에나 있는 그런 낙원이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실로 책 내용 역시 환상을 깨부수기 위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특징이자 재밌는 점은 지은이가 독자에게 해주는 말들이 인생 선배로서의 친절한 조언이거나 마음을 담아 건네는 배려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 시종일관 매우 신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때로는 읽다가 실소가 나올 만큼 매우 구체적으로까지 시골생활을 흉보고 있다. 목차를 훑어만 봐도 충분히 짐작될 정도로. 이를 테면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시골에서는) 구급차 기다리다가 숨 끊어진다" "자원봉사가 아니라 먼저 자신을 도와야 한다" "(시골은)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가능한 큰 개를 길러라" "(범죄자들이)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모임에 도시락을 대주면 (선거에서) 당선"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이주자들과만 어울리면 사단 난다" 등이다. 이 책은 읽기에 따라, 어느 대목은 통쾌한 생각 같기도 하고, 때로는 별 생각 없이 끄덕이게도 되고, 어떤 때는 꽤나 불편하기도 하다(아니, 자기가 뭐라고 시골을 이토록 흉보는 거야!). 그런데 다 읽어갈 무렵 새삼스레 든 생각은 이랬다. 작가 자신이 밝히듯 이 책은 '뭣도 모르고 시골생활을 염원하는 이들을 위해 쓴' 글인 것은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어떤 섣부름도 없이 시골생활을 해가자는 결연한 각오처럼도 여겨진다. 고백하자면, 책을 펼치면서 애초에는 시골이 '이런 거다' '저런 거다'를 단언하는 자체가 섣부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는 그런 인상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작가는 결국 섣부른 환상은 걷고 대신 그 자리를 '진정한 빛', '진정한 감동'으로 채우자고 말하는 듯하다.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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