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액면 그대로 보지 마라”
- 진규 최

- 2016년 6월 24일
- 2분 분량
<자아 연출의 사회학> 어빙 고프먼 지음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여러 개의 가면을 상황에 따라 바꿔가며 쓴다. 회사에서는 회사생활에,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에 어울리는 가면을 쓴다. 혼자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름의 가면을 쓴다. 동네잔치에 참가한다면 마주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다양하니만큼 보다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게 된다.
이 책 <자아 연출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 분야를 개척한 대가로 평가받는 어빙 고프먼의 책으로, 한국어판의 부제는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책을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이 건물이나 공장처럼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서 조직되는 사회생활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상세한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 나는 개인이 일상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 자신에 대해 남들이 받게 될 인상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방식, 남들 앞에서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일들을 살펴볼 것이다."
앞서 적은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는 것이 책이 전제하는 바다. 사람은 사회적 삶의 일부인 일상에서 시시각각 '자아를 연출'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양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우리가 영위하는 '사회적 삶'에 대한 꽤 색다른 이해다. 특히나 직장이나 공동체 등에서 우리가 나누는 상호작용이란 것도 새로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아무 거짓 없는 맨얼굴' 같은 것을 순수 상태로 친다. 그 무엇인 척하지 않고 그저 자신인 채로 교류하는 것을 솔직하고 정직한 것으로 치며 그런 자세를 권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순수 맨얼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맨얼굴 역시 맨얼굴로 연출된 가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낙담할 일일까. 이 책은 반대로 지적한다. 사회적 삶에서는 모두들 역할이 필요하고, 역할은 가면을 쓰는 일에서 비롯한다. 가면은 '가장한다'는 함의 탓에 부정적으로 비춰지지만, 실은 인간 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가면은 자아의 변질이 아니라 그것이 꼭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자연물의 일종일 뿐이다.
오히려 가면을 쓰지 않는 의사소통이 폐단을 일으키기 쉽다. 우연한 기회에 아빠의 직장에 놀러간 천진난만한 꼬마를 상상해보자. 두꺼운 안경을 쓰고 배가 볼록 나온, 아빠가 평소에 무심결에 묘사하던 외양의 어떤 남자가 모습을 보이자 꼬마가 외친다. "아빠 저 사람이 그 '사장놈'이야?" 사회적 역할을 전연 의식하지 않는 순진무구한 자아는 이럴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라는 무대에서 자아를 연출한다는 점은, 일상생활을 '연극'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단서를 준다. 실제 이 책은 그렇게 연극 공연의 관점을 통해, 연극 형식에서 도출한 원리를 통해, 일상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의 동태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온 세상은 다 연극이다'는 차원은 아니다. 고프먼은 사회와 자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통해 사회생활의 '진짜' 구조를 살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말미에 실린 추천사에는 이런 재밌는 대목이 있다. <고프먼의 학문과 일생을 관통했던 주제를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것은 "세상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