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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다한 사람들이 ‘현재’를 사는 법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16년 7월 8일
  • 2분 분량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다니엘 에버릿 지음


이 책은 남미 대륙 아마존 강 유역에 사는 파다한 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파다한 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거주지가 외부 세계에서 동떨어진 아마존 유역인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그들의 언어에 있다. 일단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는 외지인이 아무도 없고, 그들 부족민 중에도 외지 언어를 구사하는 이가 없다. 이런 탓에 이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등을 이해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언어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하다." 이들의 말은 현존하는 다른 어떠한 말과도 연관성이 없다. 얼핏 들으면 전혀 인간의 말로 들리지 않고 동물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저자 다니엘 에버릿은 언어학자이며 이 책의 내용을 경험하던 당시에는 기독교 선교사 신분이었다. 그는 파다한 언어를 배운 다음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목적을 갖고 1977년 말에 외지인이 닿기 힘든 땅인 파다한 마을에 처음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30년 간 아마존 강 유역 곳곳에 퍼져 사는 여러 파다한 마을에서 몇 년씩 거주하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경험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연구했다. 그가 처음 파다한 사람들을 찾아간 목적은 '선교'였으나, 결론적으로 그의 목적은 실패하고 만다. 그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에 깊이 빠져들면서 오히려 자신이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로 거듭나게 된다. 아마존 현장 연구가 그의 삶을 바꾼 것이다. 이 책은 그 심경의 변화를 소개한다. 그는 파다한 사람들의 무엇에 감화된 것일까?


저자는 30년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바로 파다한 사람들을 처음 봤을 때라고 말한다. 첫 만남부터 이들은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했다." 정글에서의 삶이란 어찌 보면 고난의 연속인데, 그럼에도 이들은 여유를 잃는 법이 없었다. 이를 단순히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라고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들의 문화 전반이 철저히 '현재'를 인식하게끔, 일상의 기쁨에 집중하게끔 수렴돼 있다. 저자는 그들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이 독특한 문화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하지만,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게 일상인 문화권에서 건너간 저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여러 곤란을 겪는다. 그 세세하고 흥미로운 (때로는 가혹한) 우여곡절들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다.


철저하게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사는 파다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언어를 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파다한 사람들은 직접 경험한 것만을 말하고, 그런 이야기만 믿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경험이 곧 인식이며 세계 자체다. 경험 밖의 영역이나 추상적인 영역은 그들 세상에서는 도외시된다. 이는 아마존 유역에 사는 다른 부족들과도 차별적인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다. 저자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가 실패한 궁극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음'을 전해주면 이런 식으로 반문한다. '네가 그걸 봤어? 너도 거기에 있었어? 아니라면 우리는 믿을 수 없어.'


파다한 사람들의 철저한 '현재 지향', 그리고 책에서 수시로 묘사되는 그들의 풍요로운 웃음소리는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아마존 마을 답사기인 한편 인류학과 언어학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탐구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큰 미덕은 저자의 이야기 솜씨인 것 같다. 파다한 부족에게 큰 애정을 가진 저자는 그 애정만큼이나 생생한 관찰과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의 삶이 현재로부터, 그리고 구체적인 경험과 인식으로부터 동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언제든 거듭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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