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바깥으로 나가기 위하여
- 진규 최

- 2019년 2월 22일
- 3분 분량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 지음
보통은 ‘안내서’라는 말이 붙으면 ‘길 찾기 안내서’라고 해야 어울리는 법인데 이 책의 제목은 <길 잃기 안내서>이다. 책의 부제는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이 제목들로 짐작해 보면 이 책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길 잃기’를 안내하는 책이리라. 더 먼 곳은 어디일까? 더 먼 곳에 이르면 무엇이 기다리는 것일까? 저자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멀고도 가까운> 등으로 이름을 알린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이다. 방금 소개처럼 그는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이기에 자연스레 그의 책들도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을 담은 책과 개인의 내밀한 생각을 드러내는 에세이로 나뉘는데 이 책은 에세이에 속한다. 구성이 독특하다. “1장 열린문 / 2장 먼 곳의 푸름 / 3장 데이지 화환 / 4장 먼 곳의 푸름 / 5장 방치 / 6장 먼 곳의 푸름 / 7장 두 개의 화살촉 / 8장 먼 곳의 푸름 / 9장 단층집”. 이것이 책의 목차이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 과거로 훌쩍 떠났다가 ‘먼 곳의 푸름’이라는 제목을 가진 장으로 꾸준히 돌아온다. ‘먼 곳의 푸름’ 장에는 주로 작가가 빠져드는 ‘푸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수평선의 푸름, 이브 클랭의 ‘푸른색’,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이야기 등등. 푸른색은 우울, 멜랑콜리 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저자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두움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다. 훌쩍 떠났다가도 거듭 ‘푸름’으로 회귀하는 구조는, 이 이야기가 실은 ‘길을 잃지 못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떠나지만 떠나지 못하는. ‘푸름’은 작가에게 일종의 ‘집’인 것이다. 끝내 바깥에서 문을 잠그지 못하는 집. 불태우고 떠나지 못하는, 그래서 다시 문앞에 서게 되는 그런 집. 그렇다면 길을 잃은 일은 실패인가. 책에서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는데 ‘wander’이다. 작가는 어느 날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집어든 낡은 책에서 본 대목을 소개한다. “피트리버 원주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희한한 현상이 하나 있다. 그들은 그 현상을 ‘방랑하다(wander)’라는 영어 단어로 묘사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방랑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방랑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어떤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탓에 이전까지 익숙했던 환경에서의 삶을 갑자기 견디지 못하게 되는 일인 듯하다. 그런 사람은 방랑하기 시작한다. 목적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낡은 책의 대목은 이렇게 이어진다. “당신이 정말로 야성적인 상태가 되면, 그런 야성적인 존재들이 어쩌다 당신을 볼 수 있고 심지어 그중 하나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있다. 당신이 추위에 떨며 고생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당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방랑은 끝난다. 방랑하던 사람은 이제 샤먼이 된다.” 낡은 책이 알려주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방랑하는 사람이 방랑을 끝내고 돌아오면 그는 이전과 다른 존재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재차 ‘푸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지만 매번 다른 내용의 ‘푸름’으로 돌아가듯이. 같은 집으로 들어가더라도 다른 존재가 되어 돌아간다면 그것은 방랑이 이룬 성과일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상실이 발견이 되는 순간’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길 없는 곳, 막다른 곳이 어떻게 ‘새로운 길’일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그래서 길을 잃고 심지어 자신을 잃는 경험조차 두려워만 하지는 말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더 먼 곳이란 어디일까? 더 먼 곳에 이르면 무엇이 기다리는 것일까? 지도에서 가장 먼 곳은 지도의 끝이 아니라 지도의 바깥이 아닐까. 그런데 지도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를 바꾸는 일이라도 해볼 만하다. 다른 지도가 있는 곳은 바로 다른 세상이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방법은 리베카 솔닛이 전하는 교훈처럼 우선 길을 잃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을 잃는 경험을 통해서일 것이다. 자신을 잃고서야 펼쳐지는 가능성. 얼마 전 <무명의 말들>을 낸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유리창의 이쪽이 밝고 저쪽이 어두우면 밝은 쪽은 나를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유리창 너머의 다른 존재를 보기 위해서는 이쪽의 불을 끄면 된다. 처음엔 깜깜하겠지만 차츰 반대쪽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떤 (사회)운동을 하려면 불을 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 나는 지금 불을 끈 채로 나를 바라보며, 나의 너머에 있는 다른 세계가 보이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