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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패닉’도 응시하라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15년 11월 13일
  • 2분 분량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지음 책의 저자는 리베카 솔닛. 올해 출간된 화제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솔닛이 2010년에 출간한 책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인권, 기후변화, 반전, 반핵 문제 등에 천착해온 솔닛은 이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저술가이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재난 탐사기'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까지, 지난 100여 년간 일어났던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탐사한다. 탐사의 결론에는 반전 아닌 반전이 있다. 그 하나는 대재난에 처한 인간이 이럴 것이라는 통념 - "재난 시 인간은 상실과 고통과 비애에 사로잡히고, 사회는 약탈과 파괴와 살인과 폭동의 디스토피아로 변할 것이다" - 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재난에 처하면 "사람들은 기존 사회질서가 무너진 이 폐허 속에서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갖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응시하게 되며", 평소보다 훨씬 이타적인 인간 본성이 두드러지고, 스스로 자율적인 재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따뜻한 연대와 상호부조를 꽃피운다는 것이다. 재난은 인간의 믿음과 행동에 따라 '재난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여러 재난의 역사를 더듬고, 관련 자료들을 연구하고, 수많은 재난 경험자의 육성을 듣는 작업을 거쳐 제기하는 이 책의 파격적인 주장이다. 또 하나 반전 아닌 반전은, 그렇다면 공포로 범벅된 재난에 대한 저 디스토피아 이미지를 생산하고 퍼뜨리는 세력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 세력은 바로 '엘리트'들이다. 재난 시 누구보다 먼저 '패닉(공황)'을 일으키는 소수의 권력자들. 이들은 자신들 외의 일반 시민들이 공항에 빠져 폭동을 일으킬 거라는 상상의 공포 탓에 '엘리트 패닉'을 일으킨다. 결국 자신들이 수호하는 질서가 무너지는 게 두려워서 시민들을 폭력으로 통제한다. 그리고 "재난 속에서 서로 돕고자 연합한 이들의 공동체를 이내 파괴"하고 "서로를 두려워하라고, 공적 활동은 위험하고 골치 아픈 일이라고, 안전한 공간에 틀어박혀 살라"고 시민들을 몰아붙이고 억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어닥친 이후 사태다. 재난의 시작은 허리케인으로 인한 자연재해였지만 당국의 '이례적인 엘리트 패닉 탓에'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피해자들을 더럽고 음침한 슈퍼돔과 컨벤션센터에 강제로 몰아넣고서 자발적인 대피조차 막아 뉴올리언스를 '감옥'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 '당국은 카트리나 피해자를 골칫거리나 괴물로 간주했고 …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거나, 사람들의 대피를 막거나, 사람들을 죽이거나, 죽음을 방조했다.' 이런 '엘리트 패닉'은 미디어를 조종해가며 재난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을 심각하게 망가뜨려버린다. 우리도 충분히 피부로 겪고 있는 일들이다. 이 책은 일상이 재난인 우리시대에 주는 기록으로도 읽힌다. 두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하나는 인간의 믿음과 행동에 따라 폐허에서도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시 주의해야 한다는 점. '혼이 비정상'이라고 우려하고 자빠진 소수 권력의 증상(과 그들이 일으키는 제2의 참사)은 딱 전형적인 엘리트 패닉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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