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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도장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22년 10월 12일
  • 5분 분량

2014년에 포도밭출판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무척 신이 났다. 그때는 땡땡책협동조합이라는 곳에서 막 활동을 시작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더 신났을 것이다. 밖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면서 좋은 자극을 주고받고, 일상적으로는 내 가게(?)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나를 그토록 신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당시의 나는 사람들의 멋진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책으로 보였다. 누군가 몹시 뜨거운 글을 쓰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에게 가서 나랑 뜨거운 책을 만들자고 청했다. 누군가 몹시 차가운 글을 쓰면 그를 찾아가 나랑 차가운 책을 만들자고 청했다. 누가 말을 단단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그를 찾아가 나랑 단단한 책을 만들자고 청했고, 누가 다른 이의 말을 듣는 힘이 아주 강한 것을 알게 되면 그를 찾아가 나랑 듣는 힘이 강한 책을 만들자고 청했다.

잔뜩 신이 나서 ‘나랑 책을 만들자’고 청하는 나를 저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의 인상은 아마 이랬을 것 같다. 잘 웃는 사람. 뭐가 기분이 좋은지 많이 웃는 사람. 그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실제로 나는 늘 벌건 얼굴을 하고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게다가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는지 형체가 또렷하게 찍힌 사진이 드물다. 그리고 사진마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별한 포즈가 하나 있다. 행복이 절정에 달한 얼굴인 나는 한 손을 상대에게 쭉 내밀고 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려 상대와 부딪히고 있다. 엄지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멋진 모습이 보이면 꼭 그에게 같이 책을 내자고 졸랐고 그가 긍정적으로 응하면(혹은 아직 다 넘어온 건 아니더라도 여지가 보이면) 엄지 도장을 찍자고 요청했다. 나는 엄지 도장 방식으로 무척 많은 계약을 했다. 그렇게 맺은 계약 중 열에 여덟은 신성히(?) 이행되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든 책들이 포도밭출판사의 출간 목록 중 절반을 훌쩍 넘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나도 나지만 저분들은 무슨 생각으로 엄지 도장을 믿은 걸까.

물론 정식 계약서를 안 쓴 건 아니다. 엄지 도장을 찍고 돌아와 구체적인 기획안이 오간 후에는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날인을 하고 계약금을 송금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그럼 엄지 도장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정식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의 ‘찜’ 같은 의미일까. 그저 장난이었을까. 돌아보건대 내게는 엄지 도장 자체가 의미 있고 중요했던 것 같다.

엄지 도장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여 접근(!)한 분들 대부분이 출간 제안을 받기 전에는 자신의 멋짐이 책으로 엮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자주 되묻는 말이 있었는데 “망하면 어떡해요?”였다. 보통 망할 리 없다고 설득하는 게 맞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왜냐면 나 역시 지금 추진하려는 기획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망함이란 뭘까를 생각해 본다. 망함의 기준도 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상당히 자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 출판에서 ‘망했다’고 할 때는 ‘책이 생각보다 안 팔리는 결과’를 일컫는 것일 텐데, 이때 책을 많이 파는 방향 대신 저 ‘생각’의 기대 수준을 낮추는 방향을 선택하면 구원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이 방향으로 일을 추진했고 저자를 설득했다.

“우리 돈 들어가는 거 없어요. 글은 당신이 쓰고, 편집이랑 디자인은 제가 할 거고, 종이값이랑 인쇄비에만 돈이 들어가는데 그건 300부만 팔아도 세이브가 돼요. 우리 책이 300부가 안 나가겠어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망할래야 망할 방법이 없어요. 걱정 말고 고고.”

이때 상대가 걱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표정을 지으면 얼른 엄지를 내밀어 도장을 찍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돌아보니 약간 사기꾼처럼 ‘지속 가능’한 출판을 해왔다.

내가 해온 이런 출판 방식에는 난점이 있는데, 책은 많이 팔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저자와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인 난점이다. 그리고 자기 책이 많이 팔리길 바라는 저자에게 출판사가 저러한 태도를 내보인다면 그 즉시 출판사 평가 점수가 마이너스 마이너스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넘어 저자에 대한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압도적으로 훌륭한 책을 3,000부 아니 30,000부 책임지고 팔아보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우리 책이 300부가 안 나가겠어요?”라고 한다는 것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집필에 임하려는 저자를 모욕하는 말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곤란한 점이다. 그러니 결코 함부로 시도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제껏 이렇게 함부로 해왔는지 모르겠네. 게다가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런 방식은 대량복제생산이 덕목인 출판의 속성상 무척 치명적으로 몹쓸 방식이다. 이처럼 여러 곤란한 지점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내 입장은 이렇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깨닫는 것인데, 아마도 이제껏 나는 내가 아는 친구들의 멋짐을 증언하고 기념하기 위해 책을 만들어온 것 같다. 그리고 그걸 해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돈보다는 시간을 써서 일하는 방법이랄까?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기보다 안 팔려도 괜찮은 상황에서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 대해 미련이 생길 것 같으면 열심히 딴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어쩌랴’를 되뇌었다. 이렇게 못 미더운 나와 엄지 도장을 찍어주고 좋은 글을 써서 보내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책을 만들어왔다.

친구들의 멋짐을 증언하고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포도밭출판사는 이제 9년차다. 내년이면 10년을 채우게 되는구나.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해내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래 미래 따위 없어도 잘만 살아왔다. 아직 희망은 있으니까 괜찮다.

내게 ‘미래 말고 희망’이라는 금언을 마음에 새기게끔 만든 사람은 바로 이반 일리치다. 이반 일리치는 어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반 일리치는 포도밭출판사에도 여러 모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이따금 포도밭출판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다음처럼 답을 한다. “포도밭출판사가 있는 옥천이 바로 ‘포도의 고장’이고, 제 외삼촌도 옥천에서 포도농사를 하셨기 때문에 출판사 이름을 ‘포도밭’으로 지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이유가 맞기는 한데, 사실 그동안 별로 말한 적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서울을 떠나 옥천에 와서 출판사를 차리기 전에,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는 책을 펴내려고 기획했다. 생각보다 일찍 그 회사를 관둔 탓에 내가 편집까지 맡지는 못했지만 그 책은 다른 분들의 손길을 거쳐 얼마 후 멋진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비록 번역에 착수하기 전이었지만 이 책의 원서를 읽을 수 있었고, 거기서 읽은 ‘포도밭’의 비유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리치는 12세기까지만 해도 ‘독서’란 지금과 같이 혼자된 공간에서 눈으로 글자를 읽는 일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인 곳에서 글자를 ‘소리 내서 읽고 듣는 행위’였다고 말한다. 당시 독서는 이렇듯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라 몸을 쓰는 일에 가까웠고, 함께하는 노동으로서의 의미가 무엇보다 컸다는 것이다. 여기서 되게 아름다운 묘사가 등장한다. 저 당시의 ‘독서’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속한 포도밭의 포도시렁 사이를 오가며 포도송이 열매들을 하나씩 음미하고 보살피는 ‘노동’과 같은 차원이었다고 한다.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 인식하기로도, 행간들은 포도밭 이랑들이고 단어들은 포도 열매들이었다는 말이다. 포도나무 줄기가 양쪽으로 갈라진 모습을 일컫던 ‘스프레드’란 말은 오늘날 ‘펼침면’을 칭하는 말이 되었고, 처음에 포도시렁이 이랑마다 줄지어 드리워진 모습을 일컫던 파지나(pagina)라는 말은 오늘날에 와서는 쪽(page)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니 ‘포도밭’이라는 말이 너무 좋을 수밖에. 그래서 나는 출판사 이름을 포도밭출판사라고 짓는 데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반 일리치 할아버지는 충북 옥천의 한 출판사 이름이 ‘포도밭출판사’가 된 까닭이 자기 때문인 걸 알 리가 없고 나는 이런 일들이 무척 기쁘다.

그리고 내가 지금과 같은 ‘친구 중심’ 출판을 하게 만든 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파구스(pagus)라는 라틴어. 파구스는 동네, 지역, 시골 등을 의미하며 ‘산책하고 싶어지는 경작지’라는 풀이도 있다. 앞에서 라틴어 파기나가 쪽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누군가는 파기나보다 파구스라는 말에서 쪽이라는 말이 가리킨 본래 의미를 짐작하기도 한다. 여기에도 꽤 그럴싸한 근거가 있다. 경계석으로 구분된 경작지(파구스)들을 산책하는 행위가, 쪽에서 쪽으로 건너가며 단어들을 음미하는 독서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출판의 이상은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파구스적 의미의 쪽들을 만들어가는 것. 왜냐면 나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때가 좋다. 그러려면 책을 만들 때도 조금은 그처럼, 즉 어슬렁어슬렁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짐(?)들이 쌓여서 엄지 도장 방식의 계약을 낳았다고 문득 주장하고 싶다. 어느 한가한 날에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야, 날도 좋은데 같이 산책이나 할까?”라고 말할 때처럼, 저자에게도 “오, 나랑 책이나 낼래요?” 하는 느낌으로 출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쪽 한 쪽 만들어가는 것이 출판 일을 하면서 내가 지키는 희망이다.


최진규

충북 옥천에서 산다. 교정교열 일도 하고 북디자인 일도 한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화단의 식물을 휴대폰에 담는 걸 좋아한다. 요새는 날이 추워져서 꽃은 드물게 보이고 어디에나 배추가 많이 보인다. 아는 분은 아실 텐데 배추는 가만 보면 거대한 장미처럼…


* 『어떤 계약』(어떤출판연구회 발행, 2022년 10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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