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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손’이 전하는 희망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16년 2월 5일
  • 2분 분량

<근질거리는 나의 손>, 김성원 지음


지난주 며칠간 이어진 한파에 세탁기가 얼었다. 사나흘은 괜찮았지만 닷새가 넘어가자 차츰 입을 옷이 없어지고 손빨래를 해야 하는 불편이 시작됐다. 게다가 탈수 기능으로 물기를 빼지 못한 옷들은 제대로 마르질 않았다. 그때 예전에 어느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본 소위 '적정기술 세탁기'가 떠올랐다. 이 물건은 페달을 밟으면 내부의 통이 돌면서 세탁과 탈수가 되는 도구로 전기 없이 작동하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새삼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서 '이참에 적정기술 세탁기를 구해볼까'라고까지 생각했으나 알아보니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우리는 전기 없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기를 적게 쓰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만일 전기가 넘치는 세상을 좇다가는 핵 발전과 같은 대규모전력생산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기 십상인데, 이러한 전력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대형사고 위험을 내포한다. 그리고 후쿠시마처럼, 밀양처럼 삶터와 자연을 파괴하는 비극을 일으키고 만다.


그런데 전기라는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지금 우리의 생활을 가능케 하는 저 많은 작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근질거리는 나의 손>에서 근사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사회와 삶의 경로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손'을 쓰라고 권한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길을 가다 한 노인이 항아리로 채마밭에 물을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효율은 낮고 힘들어 보였다. 자공은 용두레라 불리는 물 대는 기계를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노인은 일을 쉽고 빠르게 하려고 기계를 만들어 쓰고자 하면 반드시 '기심(機心)'이 생기게 되어 순진하고 소박한 생명력을 잃게 된다고 한다. 기심으로 인해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도를 체험하고 살필 수 없다며 거절했다. (13쪽)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 채마밭 노인의 일화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하루의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고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심 없는 삶, 순진하고 소박한 생명력으로 채워지는 삶으로의 전환을 생각하면 기계를 거부하는 노인의 실천은 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국내에 직정기술과 수공예 생활기술 들을 소개하고 실천해온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국내 처음으로 '흙부대 집'을 지어서 살고 있으며 손수 난로제작, 직조, 미장 등을 익히고 가르치고 있다. 앞서 채마밭 노인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손의 기술을 되살리고 몸의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만들고 생각하고 꾸미고 창작"하는 삶을 도모해나가자는 것이다. 한편 책에는 전기, 기계, 자본 등이 압도하는 현대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가득하다. '손 쓰는 삶'이란 몸이 지닌 잠재력을 앗아가는 산업 문명에 맛서는 대안으로도 유의미하다.


워낙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서 책에 소개된 여러 생활기술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들지만, 그럼에도 잠자고 있는 우리 안의 '손 쓰는 인간'을 깨우자는 말이 참 솔깃하다. 이 책은 생활의 재료들을 직접 매만지고 두들기면서 살고 싶어 '근질거리는' 이들에게 훌륭한 발판이 돼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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