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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물들의 연옥에서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19년 5월 3일
  • 2분 분량

〈텍스트의 포도밭> 이반 일리치 지음

일리치의 지적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떠나, 분명한 변화상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인 점만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펼쳐 읽은 일리치의 책들을 이제 모두 덮으면서도 처음 고민에 빠지게 한 문제는 여전하다. 인쇄된 언어에 대한 독점을 타파하고 등사물들의 연옥에 빠지지 않을 지금 우리의 방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은 2016년에 현암사에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나는 2013년 가을까지 현암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는데 퇴사하기 전 이 책을 기획하고 나왔다. 그래서 나름 인연이 있는 책이다. 게다가 ‘포도밭출판사’라는 이름을 지을 때도 어느 정도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포도밭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라고 해야 할 이 책을 여태까지도 전부 읽지는 않았다. 생각날 때마다 띄엄띄엄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래도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만 합당한 독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속도는 유난히 느리다. 변명하자면 아껴서 읽는 거라고 하고 싶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펼쳐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다른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머리말에 적힌 인상적인 한 구절이 다시 <텍스트의 포도밭>을 펼치게 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의 머리말 중 한 구절이다. “이 책의 글들은 (...) 성격상 정기간행물에 싣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쇄된 언어를 출판업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탓에 등사물들의 연옥에 빠지기 십상인데다 (...)” ‘등사물들의 연옥’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었다. 진지하고 심각한 말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나 역시 책들로 가득한 서점이나 책장을 볼 때면 알게 모르게 ‘등사물들의 연옥’이라는 표현과 일치하는 감상을 가지곤 했기에. 그리고 일리치의 지적을 그대로 적용하면, 나는 ‘인쇄된 언어를 독점하는 출판업자’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 공감하고 지적을 받아들이자 다시금 ‘책’에 대한 성찰이 가득한 <텍스트의 포도밭>을 펼쳐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일리치는 서양 중세 시대인 12세기 무렵 명맥이 끊어진 ‘수도사적 읽기’의 의미를 탐색한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특히 책에 적힌 글을) 읽을 때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지만, 12세기 때까지만 해도 책은 ‘소리 내서 읽는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일은 묘기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도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당시에는 독서 행위가 두뇌 활동만이 아닌 신체를 다양하게 동원하는 활동이었다는 점이 가장 핵심이다. 누군가(자기 스스로를 포함해서) 글자를 소리 내서 말하면 그 소리를 받아들이고 묵상하는 일이 당대의 ‘독서’였다는 점을 일리치는 문헌을 통해 확인시킨다. 이러한 전통은 주로 수도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졌다. 그러다 12세기 후반부터 비로소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방법들이 창안되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띄어쓰기’라는 편집 기술이 생겨나고, 각주, 색인, 인덱스가 책의 레이아웃에 자리 잡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라틴어에 깃들어 있던 신성한 권위가 해체되면서 알파벳 문자를 전보다 자유롭게 사용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책은 말의 시대를 지나 문자의 시대에 맞는 매체가 된다. 이 시대적 변화를 일리치는 ‘학자적 읽기’가 시작되는 분수령이라고 표현한다. <텍스트의 포도밭>은 인류가 근대화를 겪기 이전, 특히 12세기 서양 중세 사회의 변화상을 깨우치는 한편 ‘책’이라는 매체의 변천을 되짚어보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이다. 여기서 궁금증을 확장하면, ‘학자적 읽기’ 시대 이후 책은 과연 어떤 물건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식을 보관하는 창고이자 지식의 내용을 공학적으로 해석하도록 여러 레이아웃 기능을 통해 안내하는 물건의 지위를 갖던 책은 지금 무엇이 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일리치의 견해는 그의 또 다른 저작인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를 보면 찾을 수 있다. 책이 필사의 시대, 인쇄의 시대를 지나 컴퓨터 파일의 시대가 된 지금, 텍스트들의 자리는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스크린’이라는 말은 컴퓨터 모니터에 대한 은유만은 아니다. 이제 인류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을 때도 스크린 위를 미끄러지듯 읽는다. ‘기억의 틀’이고 ‘지혜가 닻을 내리던 항구’이던 ‘책’의 전통은 이로써 저물고 있다고 일리치는 진단한다. 그러면서 책-스크린을 읽는 현대인의 독서는,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지혜를 묵상하는 행위’이던 12세기로부터 멀어져 ‘인공 지능적 활동’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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