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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누구인가, 농업은 어떻게 변하는가

  • 작성자 사진: 진규 최
    진규 최
  • 2018년 8월 9일
  • 2분 분량

<농업 변동의 계급 동학> 헨리 번스타인 지음, 따비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다. 농촌 생활이 '예쁜 그림'처럼만 보여지는 듯해서 불만도 있었지만 대체로 재밌게 보았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 우연히 어느 관객의 영화 감상기를 보았는데 거기 담긴 영화에 대한 지적이 또한 참 재밌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첫째, 영화 도입부에서 오래 비워두었다 돌아온 집 대문 옆에 쌓인 통나무 땔감의 절단면이 새하얗더라는 것. 그것은 영화의 설정과 달리 장작을 방금 패서 쌓았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차가운 난로에 불을 때면 연통에서 연기가 역류하기 마련인데 어째 영화에서는 연기가 하나도 안 나느냐는 지적과, 시골집을 오래 비우면 돈벌레나 거미 소굴이 되기 마련인데 거미줄 하나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까지. 실제 시골에 사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깨알 지적들이라 재밌었다. 사소한 디테일만 문제 삼는 건 아니었다. 농촌 생활이라면서 땀 흘려 일하는 장면이 너무도 드물다는 지적은 참 타당하다. 영화 주인공이 맛나 보이는 음식들을 많이 해먹는데, 마트에서 장만 잘 보면 어디서든 해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들을 보여주는 게 농촌 생활과 무슨 연결점이 있느냐는 지적도 타당하다. 결국 글쓴이는 영화를 본 소감을 "예쁜 세트장에서 찍은 예능 보고 온 기분"이라고 정리했는데 나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요컨대 영화는 농촌 생활과 농민의 삶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여 보여준다. 영화가 다 그런 거지, 라는 입장도 있을 수 있겠으나 실제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입장에서는 '낭만화'에 대한 불편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 글쓴이는 마침내 "(임순례) 감독님도 시골 생활 안 해봤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겪어봐도 모르는 일은 많다. 오히려 겪을수록 모를 때도 있다. 이를 테면, 위의 말대로 시골에 살면 시골 생활을 아는 걸까. 시골 생활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엄청 다양한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한편 이런 문제도 있다. 시골 자체를 넘어 시골을 둘러싼 환경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시골을 단편적으로, 단순화해서 아는 데 그치지 않을까. 최근에 농촌과 농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문고 시리즈가 출간되고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도서출판 따비가 펴내는 '따비 스터디' 시리즈다. 현재 출간된 총 세 권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농업 변동의 계급 동학>이다.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첫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농민'을 말할 때 그 농민은 누구인가? 어떤 계급인가?"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농민을 단일한 '농민 계급'으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은 농민 안에도 다양한 계급 구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테면, 다수의 임노동자를 고용해 영농을 하는 대농과 가족이 모두 달려들어 농사를 지어 겨우 먹고살 만한 소출을 내는 소농의 경우, 둘 다 '농민'으로 불릴지언정 그들의 사회경제적 계급은 다르다. 일반의 농민 중에도 다양한 계급 분화가 존재한다. 소농, 소규모 농민, 가족농 역시 따지고 보면 각각 다른 계급이다. 나아가 소농이나 가족농 안에서도 소규모 자본주의적 농민, 상대적으로 성공한 단순상품생산자, 임노동자 등의 계급 분화가 존재한다. 이처럼 똑같이 '농민'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계급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첫 번째로 강조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이유로 "농민은 '땅의 사람들'이다"와 같은 단순화한 인식을 비판한다. 농민을 '땅의 사람들' 같은 낭만화한 단일체로 파악하면 결코 '농업 변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농업 변동, 즉 '농업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은 농민에 대한 단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농민 안의 다양한 계급 분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농업의 변동을 올바로 포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 책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화두는 급변하는 지구적 구조 및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환경 속에서 농업은 어떻게 될까, 농업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묻는 일이다. 그러면서 농업의 '복잡성'을 그려 보이려 한다. 그런데 '농민 계급 분화'와 '농업 복잡성'에 대한 연구는 무엇에 수렴하는 것일까. 마지막, 책의 결론에서 저자는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농촌에서의 계급투쟁, 그리고 농민이 주체가 되는 저항운동을 어떻게 조직할까"를 고민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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