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우리는 노래하고 있나
- 진규 최

- 2015년 11월 27일
- 2분 분량
<송라인> 브루스 채트윈 지음 / 현암사 / 2012년 이 책은 여행기이자 소설이다. 사실 장르가 명확하지 않다. 작가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돌아다니며 적은 기록인 터라 일단 여행기로 보이지만, 간혹 허구로 보이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가 다른 책에서 가져온 문구와 짤막하게 적은 단상들을 맥락 없이 툭툭 넣기도 했다. 장르가 불분명한 이유다. 사정이 이런 탓에 서점에서 이 작가만을 위한 서가로 '뉴논픽션 코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갑작스레 독자들 앞에 나타나 낯설고 강렬한 여행기 두 권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작가. 이 작가는 존 업다이크로부터 "종이 몇 장에 세상을 담은 작가"라는 칭송을 받은 브루스 채트윈이다. 브루스 채트윈이 작가가 되기 전에 하던 일은 미술품 감정사였다. 18세 어린 나이에 소더비스 사의 경비로 취직한 것이 경력의 시작. 그러다 미술품을 보는 감식안을 인정받아 이내 감정사로 발탁된다. 그리고 몇 해만에 이사 자리에 오르고 소더비스 사의 명성을 이끄는 주요 인물이 된다. 하지만 시력에 문제가 생겨 소더비스 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예술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로 경력을 시작한다. 그러다 1974년 사고(?)를 친다. 어느 날 다니던 직장에 "6개월간 파타고니아로 떠남"이라는 짤막한 전보 한 통을 부치고 남미 대륙 파타고니아로 홀연히 떠난 것이다. 그때 여행의 성과가 그의 첫 작품 <파타고니아>이다. 채트윈은 이 책으로 "여행 문학은 브루스 채트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칭송까지 얻게 된다. 채트윈은 사실상 이때부터 인간의 삶의 양식은 본질적으로 거주보다 유목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그의 삶의 뚜렷한 화두는 내내 노마드, 즉 '유목하는 삶'이었다. <파타고니아> 이후 10년 후 펴낸 생애 두 번째 여행기가 <송라인>이다. <송라인>에는 유목하는 삶에 대한 인류학적 혹은 철학적 탐사가 담겨 있다. 배경은 앞서 적었듯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여기서 채트윈이 뒤쫓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인 애버리지니들이 섬기는 '송라인' 즉 '노래의 길'이다. 송라인은 애버리지니들이 믿는 창조 신화이다. 애버리지니들은 태초의 조상들이 대륙을 돌아다니며 세상 만물을 만났고, 그것들의 이름을 노래로 부름으로써 비로소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태초의 조상들은 대륙을 떠돌며 새를 만나면 새를 노래로 부르고, 개미를 만나면 개미를 노래로 부르고,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노래로 불렀다. 그렇게 노래로서 세상을 창조해간 발자취가 있는데 그것이 '송라인'이다. 더 신비로운 일은 후대들의 의식과 문화이다. 애버리지니들의 삶의 중대한 목표는 조상들이 창조한 땅을 "본디 상태이자 있어야만 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혼을 다해 다음과 같은 의식을 거듭했다. 자신이 믿는 조상의 송라인을 따라 걸으며 "단어 하나, 음 하나 바꾸지 않고 조상의 시구를 부른다. 그리하여 창조를 재창조한다." 조상들을 따라 대지의 거죽 밑에 있는 '생명 있는 것'들을 모두 노래로서 (재)창조해야 한다는 소명. 이것이 애버리지니들이 섬기는 전통인 것인데, 실제로 이들은 위와 같은 구체적인 방식으로 소명에 따랐다고 한다. 조상의 송라인을 좇으며 전수받은 노래를 부르는 것. 그래서 만약에 송라인으로 섬기는 실제 지형이 무너지거나 파괴되면 생명을 잃는 것처럼 고통을 느꼈다. 노마드를 탐구하던 채트윈은 저곳에서 이와 같은 인류의 문화를 만났다. "본디 상태로 있게 하려는" 소명. 그리고 노래로서의 (재)창조. 지금 우리에게 저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