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순례자, 사랑하는 순례자
- 진규 최

- 2016년 3월 18일
- 2분 분량
<두 순례자>(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수록), 레오 톨스토이 지음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두 순례자>는 예핌과 엘리세이, 두 노인의 이야기다. 예핌은 모든 일에 있어 신실하고 자기 일에 엄격했으며, 나이가 일흔 살이었지만 건강도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에 비해 엘리세이는 몸집이 왜소했고 얼굴빛도 거무스름했으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래 부르며 사람들과 노는 일을 좋아했다.
두 노인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나자고 한참 전부터 약속해둔 터였다. 그런데 예핌이 항상 일이 많아 바쁘다며 약속을 미뤘다. 예핌은 집안일부터 자식들 일까지 뭐든지 자기가 단도리를 해야 직성이 풀렸으므로 늘 여유가 없었다. 반면 엘리세이는 자기가 집에 없더라도 다들 알아서 잘 해낼 거라고 믿었기에, 어서 간절히 바라온 순례를 떠나자고 재촉했다. 심지어 엘리세이는 예핌처럼 부자가 아니라서 여행 자금이 부족하면서도 그렇게 졸랐다. 둘은 가네 마네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예핌이 마음을 잡으면서 길을 떠나게 된다.
여로에 오른 지 다섯 주째였다. 그날 두 노인은 어느 흉년 든 지역에 이르렀다. 계속 나란히 걷던 둘은 엘리세이가 농가에 가서 물을 좀 얻어먹겠다고 하는 탓에 결정적으로 길이 어긋난다. 예핌은 목표한 순례지를 향해 쭉 걸어가지만, 엘리세이는 물 한 잔 얻어 마시러 간 농가에서 용무를 마치고 바로 돌아 나오질 않은 것이다.
엘리세이가 찾아갔던 농가에는 흉년 탓에 굶주린 일가 식구들이 곧 죽을 듯이 지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기력이 없고 어른들도 맥없이 누워 있었다. 그 집 할머니에게 물어 사정을 들어보니, 이 가족의 상황이 원래부터 이토록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흉년에도 불구하고 먹고살려고 서로 도우며 열심히 지냈는데, 없는 형편에 지쳐가던 차에 급기야 전염병이 덮치면서 일순간 위험한 지경이 된 것이었다. 엘리세이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친구를 따라갈 생각을 접고는 그날부터 그 집에 머물며 마치 자기가 집주인인 것마냥 집안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간병을 하자 가족들의 건강이 회복세를 보였다. 엘리세이는 그제야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몸이 떠나지질 않았다. 자기가 떠난 뒤 다시 곤경에 처할지도 모르는 이 가족의 형편을 생각하자 홀가분하게 순례 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 결국 엘리세이는 가족들이 부칠 땅을 사주고 말과 밀가루와 젖소까지 사준 뒤에야 다시 여로에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수중의 돈이 모자랐기에 순례지로 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엘리세이는 다시 수 주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만 돈을 잃어버려서 혼자 돌아왔다'고만 설명했다.
엘리세이와 헤어져 순례지로 향한 예핌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예핌은 마침내 베들레헴 성지에 도착했고 여러 날 동안 그곳에서 기도를 했다. 하지만 수중의 여비를 혹시나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두고 온 식구들이 재산을 잘 지키고 있는지 걱정하느라 시시각각 마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일 년 가까이 흐르고 마침내 예핌도 자기 마을로 돌아온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마을로 돌아온 예핌은 드디어 엘리세이와 조우한다. 그리고 자신이 순례 내내 찾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로 친구 엘리세이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예핌 자신은 긴 순레 내내 기도를 쉬지 않았지만, 진정 신을 만나고 온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언제나 삶과 생명을 사랑한 엘리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