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가난’에 맞서기
- 진규 최

- 2015년 10월 30일
- 2분 분량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이 책의 원제는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그대로 옮기면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이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라는 한국어판의 제목은 이 쓸모 있는 실업의 권리를 '누군가' 빼앗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누군가로 일리치가 지목하는 것은 바로 '전문가'다. 이 전문가들은 시장 의존 사회에서 괜한 '필요'를 만들고, 이반 일리치의 표현을 따르면 '현대화된 가난'을 일으킨다. 이들 탓에 우리들이 쓸모없어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현대화된 가난'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보자. 책에 한 산모의 사례가 있다. 이미 두 아이를 낳은 이 산모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두 번의 출산 경험이 있어 그다지 두려움은 없다. 산모는 병원에 머물던 어느 날 마침 태아가 나오는 걸 느꼈다. 간호사를 부르자 간호사는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곧 살균수건을 가져오더니 아기의 머리를 자궁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으며 산모에게 힘주지 말하고 한다. 왜냐하면 "레비 박사님(전문가)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화된 가난'의 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국민이 주택을 가질 권리를 법으로 선포한 날, 그동안 국민의 4분의 3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온 집이 하루아침에 마구간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이날 이후 자격증 있는 건축가가 그린 설계도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또한 현대화된 가난의 사례다. 직업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일들이 '노동시장'이 확장되면서 없어져버렸다. 그로 인해 직장 밖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자유마저 사라진다. 이 또한 현대화된 가난의 사례다. 초고속 교통체계는 실상 대다수의 시민들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하게 만든다. 기상 캐스터(지금으로 치면 휴대전화의 날씨 어플) 없이는 날씨를 예상하지 못한다. 자동차는 두 다리가 버젓이 하던 일을 빼앗는다. 의무교육제도의 학교는 교육을 독점하고 바보 되기를 가르친다. 목마름은 콜라가 필요한 상태로 인식된다. 이런 일들 역시 현대화된 가난의 사례다.
일리치는 위의 예들을 들면서, '현대화된 가난' 현상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면서 문화에 스며든다고 지적한다. 현대화된 가난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산업적 도구'다. 인간 사회가 유용하게 활용해온 '공생의 도구'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산업적 도구들이 삶을 장악하면서 그동안 개인과 집단의 자율성을 길러주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삶'은 체계적으로 '몰수'된다. 그리고 '필요-만족의 관계'가 바뀌어버린다. 실제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상품처럼 만들어지면서, 그 괜한 필요를 얻어야 만족을 느끼는 기묘한 관계가 생겨난다. 이는 인간의 자율적 창조성을 빼앗고, 그 한 결과로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이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일리치는 이런 시장 의존을 영구화시키는 전문가 권력을 비판한다. 전문가는 생의 가치를 독점하고 제도화하는 권력 집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실업의 권리"란 '산업'의 그늘 바깥에서 자율적인 능력으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유용하게 할 권리에 대한 표현이다. '괜한 가난'은 굶주림보다 더 지독한 삶의 벼랑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