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진규 최

- 2024년 11월 17일
- 6분 분량
보름 전부터 우리집에 화장실 환풍 배관을 통해 다른 집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담배 연기는 잠깐 희미하게 나다 사라지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흡연자가 코앞에서 연기를 뿜는 것처럼 화장실로 잔뜩 들어왔고 그 냄새는 곧 집안 전체에 가득 퍼졌다. 생활하기 힘들 정도였다. 횟수도 문제였다. 평일에는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서너 차례, 밤 8시에서 10시 사이에 서너 차례 담배 냄새가 올라왔다.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수시로 냄새가 났다.
지금 사는 704호에 이사 온 지는 5년째인데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누군가 엄청난 골초가 윗집 혹은 아랫집에 새로 이사 왔나 싶었다. 연기는 아무래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니까 좀더 의심스러운 건 아랫집이었다. 그런 심증이 커질 수밖에 없는 건 아랫집인 604호에 한 달 전쯤 새로운 사람이 이사왔다는 소문을 최근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담배 연기가 날 때마다 당장 아랫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해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는 일. 일단은 보다 정중한 방법으로 신중하게 호소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한 것은, 엘레베이터에 안내문을 붙인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안내문을 써서 엘레베이터 사방 벽 중 삼면에 붙였다.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담배 피우시는 본인의 집보다 다른 집으로 냄새가 더 많이 올라갑니다. 화장실 배관으로 담배 연기가 올라와서 저희 집은 집안 전체에 연기가 가득찹니다.너무나 괴롭습니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됩니다. 다른 집에 고통을 주는 행동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을 적어 엘레베이터에 붙였다. 종이를 붙이는 동안 누가 나를 목격할까봐 무척 떨렸고, 한 번은 엘레베이터가 사람을 태우려 멈추는 기미에 놀라 붙이던 종이를 확 뜯어 가방에 넣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한 행동이었다.
종이를 붙이고도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이런 종이 또한 일종의 공해가 되진 않을까. 누군가는 자신과 상관 없는 이런 경고 아닌 경고를 읽는 게 불편하고 불쾌하겠지. 아무리 부드럽게 썼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길 ‘딱 하루만 붙였다 얼른 떼자’고 생각했고 만 하루가 되기도 전에 떼고 말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기대를 했다. 글을 읽었다면 이제 안 피우지 않을까. 하지만 결과는 역시… 담배 연기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내가 너무 소심했구나, 반성(?)을 했고 다시 한번 종이를 붙이기로 했다. 다시 안내문을 붙이기 전에 관리사무소에 한번 찾아갔다. 금연 안내 방송을 부탁드릴 셈이었다. 관리소장님과 청소해주시는 분이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누고 계셨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두 분은 뜻밖에도 내게 여러 응원(?)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몇 가지 팁도 알려주셨다. 안내문을 그렇게 맥없이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말을 꼭 적으라고 했다.
‘담배 피우는 당신. 몇 호인지 알고 있다.’
당신이 몇 호인지 알고 있는데 참는 중이다. 계속 피우면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 이렇게 써야만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소심하게 하루 게시가 뭐냐고. 엘레베이터 5면(3면+양쪽 문에 하나씩)에 쫙 도배해 붙이고, 일주일 정도는 붙여놓으라고, 그래야 범인이 쬐금 뜨끔할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안내문을 다시 적었다. 대체로는 앞서 적은 안내문 내용과 비슷한데 정말 저 말을 넣었다.
“몇 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양쪽 문에 붙였다. 소장님 말씀대로 아무래도 벽보다는 문에 붙여야 확실히 보일 듯해서. 그러고 하루 이틀… 이틀째에 그 일이 있었다. 어느 주민이 안내문에 볼펜으로 메모를 남겼다. 메모의 내용은 이랬다.
“몇 층이신지? 바로 아랫층을 의심해야 할듯. (저는) 603호입니다. 저희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메모를 본 순간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쩨, 이것은 603호에서 내게 604호가 범인임을 넌지시 알려주려는 메모 아닐까? 둘째, 내가 범인을 찾아다니는 일이 불러일으키는 이런 여파가 조금 부담스럽다는 사실.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가 며칠 전부터 범인을 찾겠다고 엘레베이터에 안내문을 붙이고 관리사무소에도 들락날락하는 걸 누군가 본 사람이 있을 테니,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고 다니는 사람이 704호(나)라는 게 소문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메모는 이런저런 소문을 비롯해 아파트 사정에 밝은 603호에서 내게 넌지시 범인을 알려주는 것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 604호와 바로 담판을 지어야 할 차롄가?
저런 생각과 동시에 나는 한편으로 부담을 느꼈다. 이 안내문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여기에다가 또 누군가 ‘나는 아닙니다’라고 쓰거나 또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메모를 남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순간 603호의 메모가 적힌 안내문을 확 떼어버렸다. 다른 벽에 붙인 종이들도 모조리 떼어버렸다.
자, 이제 어떡한담.
담배 연기는 또 올라왔다.
결국 604호에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바로 찾아가면 놀랄 테니 일단 쪽지를 전해보기로 했다. 너무 장황하지 않은 내용으로, 일단 가볍게 편지를 써서 문앞에 붙여보자. 하지만 무슨 내용을 써야 적당할지 자꾸 고민스러워서 여러 번 쓰고 지우고 하며 고쳤다. 나는 많이 에두르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저는 4호 라인 윗 세대입니다. 요새 저희 집에 담배 연기가 너무 많이 올라와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604호는 담배 연기로 인한 피해 없으신지요? 피해 세대들이 모여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혹시 담배로 괴로우시다면 제게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010-0000-0000입니다.”
한 시간 후 전화가 왔다.
여성 분이었다. 604호는 한달 전쯤 이사온 게 사실이었다. 지금 집에는 여성 분 혼자 살고 있고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사는 남편이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데 전에 처음 이사와 딱 한 번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엄청 뭐라고 했고 그 이후로는 꼭 나가서 피운다고. 그러고 남편은 자기 사는 집으로 떠났고 지금은 다시 자기 혼자 살고 있으므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는 604호를 의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604호를 잔뜩 의심했던 나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커져서 나는 한참이나 ‘번거롭게 해드린 점’에 사과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조금은 후련하고(의심이 끝났기 때문에) 또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의심이 틀렸으니까) 소파에 털썩 앉았는데 그 순간 또 담배 냄새가 맡아졌다. 나는 갑자기 불쑥… 이참에 의심의 뿌리를 아예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임없이 다음 행동을 했다. 아까 썼던 것과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하나 더 썼다. 이번에는 윗집인 804호에 보내는 편지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4호 라인 세대입니다. 요새 저희 집에 담배 연기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804호는 담배 연기로 인한 피해 없으신지요? 피해 세대들이 모여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혹시 담배로 괴로우시다면 제게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010-0000-0000입니다.”
역시 한 시간쯤 지나 전화가 왔다. 오십 혹은 육십 정도 나이대의 여성 분 목소리였다. 이분은 일단 우리집을 걱정해주셨다. “괴로우시겠어요. 어쩌나 이걸… 얼마나 힘들었으면 온 동네방네 종이를 붙이고 다녔을까…” 약간은 나를 힐난하는 말씀 같기도 했다. 뭘 그렇게 혼자 예민해서 유난을 떠느냐고 하는 듯한. 그래서 나는 비록 그 내용은 걱정이었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나는 804호 아저씨가 담배를 꽤 많이 피우는 흡연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수시로 바깥을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임을 엘레베이터에서 몇 차례 마주쳤을 때 몸에서 나던 냄새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 모를 일이지. 식구들이 아직 깨기 전 이른 새벽에 화장실 환풍기를 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그일지도. 그러니 804호 여성분은 남편의 흡연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나를 은근히 힐난하는 건 아닐까? 나는 조금은 그런 복잡한 의심을 품고서 통화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심증일뿐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804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여기 살면서 집에서 담배 연기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참 이상한 일이네. 604호도 아니고 우리집도 아니면 어떻게 704호만 냄새가 날까요? 근데 이유가 뭐든 날마다 담배 연기 맡으면서 어떻게 산대요. 반드시 꼭 잡아서 해결해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해서라도 꼭 해결해요. 그래야 살지 원….”
그 말씀을 듣다 보니 804호 역시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찌 된 일일까.
정말 난관에 빠진 것이, 담배 연기는 어쨌든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쭉 이어진 환풍 배관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것인데, 604호에도 냄새가 안 나고 804호에도 냄새가 안 나는데 가운데인 704호 우리집에만 냄새가 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윗집이나 아랫집 중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니면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생각을 하던 바로 그 순간에도 화장실에서는 새로운 담배 연기가 맡아졌다. 분명 위아래 집 중 누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홀린듯 화장실 천장에 달린 환풍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환풍기 안쪽에 뭔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님 화장실 천장에 뭔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사실… 지금까지 담배 연기에만 집중했지만, 최근 심하게 맡아지기 시작한 건 담배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냄새였다. 반찬 냄새, 요리 냄새, 음식 냄새, 샴푸 냄새, 비누 냄새 등 온갖 냄새들이 화장실 환풍기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5년 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지난 2주 동안 심각할 정도로(샴푸 냄새가 심할 땐 머리가 좀 아팠고, 담배 연기가 심할 때 속이 울렁거렸다) 온갖 냄새가 맡아졌다. 혹시 환풍 배관이나 천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홀린 듯 환풍기 나사를 풀고 천장에서 기계 본체를 꺼내는데 그때 툭 하면서 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용카드 반만 한 크기의 작고 네모난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주웠는데, 가만 보니 환풍기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부품이었다. 조각을 한 손에 쥐고 환풍기 안을 들여다보니, 어디에 달려 있다가 떨어져 나온 부품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그건 ‘댐퍼’였다.
아파트 같은 다세대 건물의 화장실에는 주로 댐퍼 환풍기를 설치한다고 한다. 댐퍼는 환풍기가 작동(흡기 작동)하지 않는 동안 환풍 배관을 통해 냄새가 역류하지 않도록 틈을 가로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부품. 그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화장실 공기를 빨아들일 때는 열렸다가 흡기를 멈추면 내려와 닫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환풍 배관에 모인 냄새들이 각 세대의 화장실로 들어가지 않는 원리. 결국 지난 2주 동안 우리집 화장실에 담배 연기가 쉼없이 들어왔던 것은 댐퍼가 고장난 탓이었다.
이 일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사실 댐퍼 덕분에 냄새가 화장실로 들어오지 않아 몰랐을 뿐, 평소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집이 내가 사는 라인에만 해도 한두 집이 아니라는 사실. 누가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수십 대의 담배를 피우는가 했더니, 그 범인은 아무래도 한두 사람이 아닌 것이다. 여러 사람이 여러 집에서 여러 대를 피우고 있으며, 그 냄새는 환풍 배관을 따라 오르내리다가 댐퍼가 고장난 집으로 집결한다. 음식냄새 샴푸냄새 등도 마찬가지. 각 세대에서 흡기된 모든 냄새는 환풍 배관를 타고 떠돌다 댐퍼가 고장난 집으로 집결한다.
댐퍼 기능이 있는 새로운 환풍기를 사서 다니 냄새는 바로 사라졌다.
덕분에 2주 동안 아파트 전체의 냄새를 맡은 기분. 특히 담배 연기는 울렁거리도록 맡았다.
이상한 소리지만, 그간 풀리지 않던 비밀이 풀려서 뭔지 모를 뿌듯함도 느낀다. 그리고 이거야 말로 이상한 소리인데, 내가 맡았던 냄새가 온갖 세대가 내뿜는 냄새의 총합 같은 것, 통합적인 냄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경험이 조금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또 겪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음미하게 된다. 우리의 냄새를 다 합치면 이런 냄새가 되는구나. 그리고 우리는 철저하게 그 냄새의 역류를 막은 채 사는구나.
그리고 댐퍼가 알려주듯, 총체와 부분 사이에는 사실 아주 작고 사소한 ‘문’이 하나 달렸을 뿐이다. 그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즉시 부분은 뒤집히며 전체로 바뀐다. 그 문이 닫히면 부분은 즉시 전체와 무관한 부분으로 환원된다.